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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을 넘어 ‘공동체의 얼굴’로 신자유주의 반성과 대안 모색을 위한 인류학적 논의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발간
이철  |  fer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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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20  09: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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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동안 시장 만능을 주창하던 신자유주의와 주류 경제학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양극화, 사회 불신, 기후 변화, 고립과 혐오 등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심화할수록 각자도생이 아닌 공동체와 그 기반이 되는 가치로서 호혜와 협동에 주목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커졌다. 오스트롬(Elinor Ostrom), 퍼트넘(Robert Putnam) 등 세계 석학들 역시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 간 연대와 신뢰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본, 주고받는 호혜, 함께 행동하는 협동 등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나온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정헌목 외 지음)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하여 인류학 전공자들이 3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하나의 대답이다. 

□ 오늘, 공동체에 주목하는 이유 
 “우리는 모두 거대한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고대인이 성인이 되기를 꿈꿨다면 현대인은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 대부분이 부자가 되는 길은 아득하다. 상위 0.1%의 고소득자와 하위 20%의 연평균 소득격차가 무려 1,400배이고(2023년 국세청 자료), 직장인이 서울에 있는 보통의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16.9년 동안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2023년 KB국민은행 통계) 오늘날 한국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부자가 되면 괜찮아질까. 소득 격차로 인한 극심한 경제 양극화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체제에 대한 불신,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 사회적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언제든 나의 고통, 나아가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접 경험했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기생충>의 마지막 대사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 책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그 마스터키를 호혜와 협동, 그리고 공동체에서 찾는다.  

□ 호혜와 협동에 대한 개념과 이론,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  
이 책은 먼저 제1부에서 호혜와 협동, 그리고 공동체를 둘러싼 개념과 이론을 살펴본 후 제2부에서는 이러한 개념과 이론이 실제 사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먼저 ‘호혜성’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초기의 대표 학자 모스(Marcel Mauss), 폴라니(Karl Polanyi),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살린스(Marshall Sahlins) 등의 이론을 비교 검토한다. 또 다른 주요 개념인 공유재와 관련해서는 위드록(Thomas Widlok)의 이론을 토대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연적·사회적 자원에 접근, 이용하며 관계 맺는 방식을 살펴본다. 사회적 자본과 관련해서는 부르디외(Pierre Bourdieu), 콜만(James Coleman), 퍼트넘(Robert Putnum) 등의 이론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 연구가 국내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검토한다. 나아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추적하고, 전통사회에서 호혜와 협동의 사례로 거론되어온 농촌 관행을 바라보는 이론적 틀 중 하나인 1970·1980년대 한국과 일본의 기층문화론을 비교 분석한다(붙임 3 참조).

□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호혜와 협동 
 제2부는 호혜와 협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실제 사례를 다루는데, 먼저 조선시대의 선물경제부터 시작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일기를 보면, 사회의 재생산과 관련한 ‘공적인’ 혹은 의례적인 선물을 선별해 사회의 작동 방식을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또 조선시대의 선물은 기존에 ‘선물’이라 범주화된 재화와 서비스와 단일한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 힘든 다양한 성격을 지녔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 주목해서는 마스크 착용을 비롯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을 증여로 해석할 수 있다. 증여와 공동체의 관계라는 인류학적 테마를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해 자극된 공동체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변주하면서, ‘코로나-주지(백신 맞기,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않기(코로나 예방)’라는 선물을 일반화시키는 공동체의 도덕적 자가면역 과정을 설명한다. 

현대의 난민과 이주민, 주거 공동체 등과 관련해서는 호혜성과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형태의 공동체 개념과 기본 가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최근 등장한 정치철학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집단에게 주는 증여의 의무에 바탕을 둔 공동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면역체(immunitas)’에 주목한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의 논의를 바탕으로 적용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협동조합의 전개 과정과 활성화 정도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영국의 로치데일소비자협동조합과 스페인의 몬드라곤노동자협동조합, 그리고 한국의 홍동풀무협동조합을 배태한 각각의 문화를 비교해서 살펴본다(붙임 4 참조).

□ 공동체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꿈인가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는 “공동체를 규정하는 일은 예외성과 면책성을 규정하여 내부에 포섭된 외부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동체는 외부(타자)를 식별하고 규정하여 배제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활동이며, 침입자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을 정의한다. 공동체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동체다움이 무엇인지 규정해내지만, 자세히 보면 이러한 규정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도, 실제로 공통되는 것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다수 한국인이 실질적으로 접하는 공동체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현대 한국사회에서, 한국이라는 국민국가는 ‘상상된 공동체’를 넘어 실재하는 공동체가 된다. 여전히 국민통합 기제로 작동하는 스포츠 영역이나, 일본이나 중국, 북한과의 정치·경제적 갈등, 언론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점화되는 ‘국민적’ 이슈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국민국가 한국을 부지불식간에 공동체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인식된 국민국가 공동체를 기준으로 작동하는 배제와 포함의 기제에서 이미 대한민국의 경계 안에 들어와 살고있는 ‘외부’는 차별과 혐오의 대상인 이질적 타자일 뿐이다. 

□ 만난 적 없는 공동체를 꿈꾸다 : 기묘한 친족과 사이보그의 공동체 
타자와 내부의 경계에 서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미래 공동체의 청사진으로 에스포지토와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기묘한 친족’과 ‘사이보그’를 말한다.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이성애주의, 소수자와 난민 등 타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친족적 상상을 넘어, 정상성에 매몰되지 않은 “기묘한 친족(odd kin)”이 용인되는 공동체의 등장이 필요하다. 또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신체를 더 이상 주어진 생물학적 유기체로서가 아니라 사이보그의 혼종적 형상으로 재현되는 여러 사회문화적·기술적 코드가 기입된 복합적 존재로 봐야 하듯이, 집단 역시 타자를 바라볼 때 퇴치해야 할 위험요소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토대로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철  fer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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